영어 5등급에서 AL까지 - 1편

영어 5등급에서 AL까지 - 1편

짐 정리하다 지금까지 영어 공부했던 흔적들을 찾았다. 몇 년 동안 건들지 않았던 녀석들을 보며 나 자신이 자랑스러웠다. 지금의 회화 실력을 갖추기까지 정말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다. 회화 공부에 미쳐있다 할 정도로 이 시간을 즐겼다. 영어 5등급이 어쩌다 회화에 미쳐서 AL까지 받았는지 그 과정을 풀어보려 한다.

영어 공부한 흔적들

OPIc AL (2020년 증명서다. 그래도 자랑스럽다.)

내게 영어는 도구일 뿐이었다.

나는 군대 전역할 때까지 영어와는 전혀 관련 없는 사람이었다. 영어는 단지 대학 진학이나 기타 목적 달성을 위한 '도구'일뿐, '언어'로써 받아들이지는 않았다. 최저만 맞추면 됐던 수능 영어는 5등급, 대학교 때 교내 모의 토익에서는 700점 전후로 나왔던 것 같다. 영어를 잘하지도, 못하지도 않았던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어느 날, 부모님께서 시에서 보내주는 해외연수를 권유했다. 비행기값 정도만 내면, 한 달 정도 캐나다 토론토의 대학교에서 영어 연수를 받는 프로그램이었다. 신청하는 것도 귀찮고, 괜히 부모님 돈 쓰는 일 만들기 싫어서 하기 싫다고 했다. 부모님은 좋은 기회라며 계속해서 권유했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자기소개서를 써냈다. 덜컥 면접을 보라는 연락이 왔다.

 

덜컥 캐나다 한 달 살기를 하게 됐다.

준비 따위는 없던 영어면접에서 스트레스 푸는 방법을 물어봤다. '나는 운동한다. 푸쉬업, 러닝 한다. 피곤하지만 기분이 좋다.' 이런 식으로 말했더니 붙어버렸다. 시에서 만든 어학연수 프로그램 2번째 차수였고, 홍보가 제대로 안 돼서 경쟁률이 2 대 1밖에 안 됐다는 건 붙고 나서 알았다.

 

해외여행은 둘째치고, 국내 여행도 생각 못하던 내게 첫 해외 경험을 캐나다 토론토에서 한 건 천운이었다. 맑고 쾌적한 하늘, 널찍한 도로, 모든 게 새로웠다. 줄을 당기면 Stop 사인이 켜지는 캐나다 버스도 타봤고, 르완다에서 이민왔다는 홈스테이 가족들도 만났다.

캐나다 토론토 거리

 

짐을 풀고 첫 외출을 나갔다. 길거리 대부분 사람이 한국과 달리 행복해 보이고, 느긋해 보였다. '여유가 있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다. 빨리빨리 민족인 우리와 달리 그들은 그들만의 행복한 삶을 사는 것 같았다. 지금껏 내가 살아온 세상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았다. 삶에 정답은 없었다. 지금껏 정답이라 생각하며 쫓아온 건 정답이 아니었음을 첫 외출에서 깨달았다.

 

이런저런 감정을 느끼며 우리나라 대학교 어학당 같은 곳에 수업을 들으러 갔다. 캐나다로 온 외국인 유학생들이 대학교 입학을 위해 일정 수준의 영어 공부를 하는 코스였다. 설렘과 불안함을 느끼며 강의실에 들어갔다.

 

간단하게 만나서 반갑다는 말로 자기소개하고, 자리에 앉았다. 옆에 앉은 베트남 친구가 책 빌려주는 것부터 시작해서 여러모로 날 많이 도와줬고 곧 친해졌다. 베트남, 인도, 일본 등 여러 국가에서 온 같은 반 친구들도 만났다. 그 무리가 다 같이 영화 보러 가는 걸 시작으로, 놀이공원 등등 여기저기 많이 놀러 다녔다.

 

토론토 원더랜드

 

각자 다른 문화, 다른 환경을 이 친구들과 좀 더 친해지고 더 깊은 대화를 하고 싶었다. 하지만, 언어가 문제였다. 나는 파파고로 번역해가면서 간단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게 다였다. 더 소통하고 싶었지만 언어가 부족해 그들의 환경, 문화, 사고방식들을 더 알 수 없었다는게 너무 아쉬웠다.

 

영어는 소통을 위한 언어이다.

이 때 영어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면서, 영어를 도구가 아닌 언어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와 다른 문화, 다른 사고방식을 가진 이 친구들과 더 소통하고 싶었다. 파파고를 잘 사용했지만, 한계가 있었다. 영어가 부족해서 더 물어볼 수 없었고, 더 알아갈 수 없었다. 이때 절실히 느꼈다. 회화를 열심히 해야겠다고. 그래서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을 만났을 때, 더 많이 배우고 느끼겠다고.

 

2편에서 계속